이희분 서산포스트 월간 포스트인 편집국장

이희분 서산포스트 월간 포스트인 편집국장

영원할 것 같던 뜨겁고 무더운  여름 결이 아직은 남아있는 날 거실 창문을 여니 가을이 빼 꼼  얼굴을 내어민다.

아침일과를 마치고 과일 몇 조각 과 향 그윽한 커피를 마시고 있으려니 ‘까톡까톡’ 알림이 울린다오랜만에 사랑하는 친구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은 이팔청춘 봄날인데 희끗희끗한 머리이마에 잡힌 굵은 주름군데군데 낀 기미입가의  잔주름 ㅠㅠ 어디에서  잃어버린 지도  모른 내  청춘 돌려줘 ㅠㅠ라고

어느새 지나버린 세월, 특히 청춘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나이가 되었다.

청춘입에 담기만 해도 황홀한 두 글자.

나무위키에서는 청춘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나이, 젊음이라는 단어와 거의 동의어, 끓어오르는 피, 젊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의 집합 즉 풋풋한 사랑, 겁 없이 뛰어드는 과감함, 도전정신 등 젊음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속성과 젊은 날의 좌절과 극복, 친구와의 다툼, 절교, 화해, 짝사랑, 실연 등 젊은 나이에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을 집약한 단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청춘의 시절을 보낸다.

말과 글과 얼을 잃어버리고 숱한 만행 속에 스러져간 청춘, 전쟁의 비극 속에서 봄날 꽃비처럼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버린 청춘, ‘잘살아보세잘살아보세 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름과 땡볕에 불살라진 청춘, 자유와 민주주의, 생명의 가치를 위해 생명까지 던져버린 청춘 등 어떤 청춘의 시절을 보내는가만 다를 뿐.

청춘을 주제로 하는 문학, 예능, 드라마,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학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문인들이 청춘을 노래했던가!

그 중에서도 청춘을 예찬한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서도 수록됐던 우보 민태원 선생이 쓴 청춘예찬을 꼽고 싶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鼓動)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汽罐)과 같이 힘 있다.”......

젊은 시절 한번쯤, 아니 그 이상으로 되 뇌이고 곱씹고 가슴에 새겼던 글 중의 글.

민태원 선생은 이 글에서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 청춘의 정열로 무장하고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고 풍부하게 하는 고귀한 이상을 갖고 건강하고 활기찬 육체로 힘차게 약동할 것을 당부하면서 청춘의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켜 진한 감동을 준다. 특히 일제의 만행이 점점 심해져 암울하고 칠흑같이 어둡던 시기에 이 땅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줬으니 그 가치를 말해 무엇 하랴.

이 작품을 쓴 민태원 선생은 서산이 배출한 걸출한 문인이자 언론인이다. 이 사실이 서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어깨를 더 으쓱거리게 해야 함에도 그의 고향이 서산이란 것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현재 생가지에 표석이 있고, 서산입구 국도변(음암면 상홍리)에 청춘예찬문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어서 간혹 타지에서 친구나 문학인들이 찾아와도 마땅히 보여줄 게 없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이 귀중한 자산을 활용하여 서산의 문화 예술의 수준, 특히 문학의 수준을 높이고 일이 더 나아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길도 모색하여 지역민들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예전같이 찾아가지 못하지만 문학관을 자주 간다.

시 한 구절, 소설 한 문장만으로도 가슴 벅차 오르게 만드는 작가만의 공간. 문학적 지식과 교양도 쌓을 수 있는 곳. 어디에서보다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감성과 낭만이 넘치는 곳.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여행을 온 듯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바로 문학관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다 감동받은 저자의 작품 세계와 정신세계, 삶의 궤적 등이 궁금하면 찾아가서 궁금증을 해결하고 그 작가와 더 친밀해지는 경험을 한다.

서산으로 이사 왔을 때 인구 14만이 넘는 도시에 문학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인구 7만의 부여에도 신동엽 문학관이 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가는데 거의 배나 되는 인구가 있는 서산에 문학관이 없다니.

서산은 인구 대비 문화와 예술이 활성화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의 맏형이라 일컬어지는 문학은 서산출신 문인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를 정도로 궁색하다는 것에 충격을 넘어 어이없기까지 하다.

문학은 여러 문화콘텐츠의 기초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의 잣대 역할을 한다. 시와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토론하고 음미할 줄 아는 사회는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창작과 누리는데 있어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장애가 없어 가장 민주적이며 평등한 장르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학을 다방면으로 즐길 수 있는 인프라 형성이 지금까지도 거의 안 되어 있다니 유구무언이다.

지극히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산에도 이제는 문학관이 들어서길 바란다.

바로 서산을 대표할 만한 우보 민태원 선생의 문학관이. 문학관을 매개체로 해 문학에 관련된 다양한 컨텐츠가 개발되어 지역 사회에 선하고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서울 도봉구에 있는 김수영문학관처럼. 이문학관은 주변에 위치한 김수영 시인의 본가와 묘, 시비, 현대사인물길 등을 문학관과 함께 둘러볼 만한 관광지로 이루어져 있다. 김수영문학관에서는 시와 평론, 산문, 일상유물을 상시 전시하고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며, 김수영 시 낭송대회, 김수영 청소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활발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서산 지역 문인들이 민태원 선생 선양사업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두 손 들고 격하게 환영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리 여행하기가 더 어려워지던 시기에 들린 그 소식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요 가뭄의 단비 같았다.

우보 민태원 선생 기념 사업회 초대회장인 김가연 시인은 서산이 낳은 우보 민태원 선생의 업적과 그의 문학세계를 널리 알려 열정, 사랑, 이상의 청춘정신을 기리고 예술혼을 통한 새로운 시대의 에너지를 만들어 가고 싶다. 민태원 문학상 제정, 백일장 개최, 생가 복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민태원 문학관 건립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특히 민태원 선생님이 강조한 청춘의 열정, 사랑, 이상을 널리 알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의 공간을 조성하고 노년층이 지나간 청춘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 조성도 추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가연 회장의 당찬 포부를 들으니 희망이 꿈틀거린다. 서산에도 문학의 꽃과 향기가 물씬 피어나겠구나 하는.

‘N포 시대’, ‘영끌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 삶이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같고, 이 길 끝이 어디인지 몰라 지뢰밭을 구르는 것 같이 한없이 불안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청춘들이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고 오롯이 청춘을 제대로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목 놓아 부르다 스러질 이름, 목 놓아 부르다 부서지는 이름이 아니라 언제 불러도 가슴이 용솟음치는 이름이 되고, 청춘이 지난 후 삶에서 가장 축복 받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청춘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흰 머리가 서리처럼 내린 오늘 나는 돋보기를 쓰고 청춘 예찬을 읽는다. ‘청춘예찬을 들고 민태원 선생 문학관을 거닐고 민태원 선생의 문학 세계를 향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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