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산에 기대어 버텨온 서산, 이제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가재군 서산포스트신문사 대표이사
서산의 위기는 더 이상 징후가 아니다. 현실이다.
대산공단의 흔들림은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부진에 그치지 않는다. 서산 경제의 뿌리 자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다. 산업이 무너지면 고용이 흔들리고, 고용이 흔들리면 소비가 얼어붙고, 소비가 꺼지면 상권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인구 감소가 기다린다. 지금 서산이 마주한 것은 바로 그 연쇄 붕괴의 초입이다.
문제는 위기 그 자체보다, 이 위기를 맞이한 서산의 태도다.
서산은 오랫동안 대산공단의 성장에 올라타 도시의 외형을 키워왔다. 지역경제가 커지고 인구가 늘고 재정이 받쳐주자,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서산의 실력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그것은 실력이라기보다 의존이었다. 특정 산업의 호황에 기대 성장한 도시가 그 산업의 불황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더 뼈아픈 것은, 이런 위험 신호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 편중의 위험, 지역경제의 단선 구조, 원도심 공동화, 청년층 이탈 가능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그런데도 서산은 대비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비하지 않았다. 잘 나갈 때는 누구도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말하지 않았고, 산업 다변화는 늘 구호에 그쳤다.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일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서산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지역사회 일각에는 막연한 기대와 안이한 낙관이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다.”
“기업이 알아서 회복할 것이다.”
“정부 지원이 더 오면 버틸 수 있다.”
이런 식의 안일한 기대는 위기를 극복하는 태도가 아니라 위기를 방치하는 태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희망고문이 아니라 현실 직시다. 대산공단의 과거 영광이 저절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정치권의 대응은 더욱 실망스럽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공약들을 보면 위기 앞의 절박함보다 계산된 무난함이 먼저 보인다. 지금 서산은 판을 바꿀 결단이 필요한데, 후보들의 공약은 하나같이 기존 정책의 소폭 보완이나 무난한 개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비전도, 지역 구조를 뒤집어놓을 만큼 과감한 구상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듣기 좋은 말은 많지만, 도시의 운명을 바꿀 말은 없다.
왜 그런가.
결국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의 공격이 두려워 무난한 말만 반복하는 정치적 비겁함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에 위기의 본질을 돌파할 역량도 의지도 없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지역 발전을 말하지만, 정작 지역이 가장 아픈 곳을 도려낼 결심은 하지 못한다. 그런 정치로는 위기를 관리할 수는 있어도 극복할 수는 없다.
행정 역시 자유롭지 않다.
지원책과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어에 가깝다. 물론 지금 당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응급처치만 반복한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서산 경제의 중심축을 앞으로 무엇으로 다시 세울 것인가인데, 이 질문 앞에서 행정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정치권은 지나치게 가볍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위기는 더 깊어진다.
원도심 문제도 다르지 않다.
번화로와 시청사 일대 구 상권 쇠퇴는 단순한 상권 이동이 아니다. 도시의 중심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다. 중심이 비어가는 도시는 겉으로 아무리 새 건물이 들어서도 속이 빈 도시가 된다. 여기에 새로운 개발지구가 더해지면, 성장의 외피는 두꺼워질지 몰라도 내부의 분산과 공동화는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다. 지금 서산은 커지는 도시가 아니라, 중심 없이 흩어지는 도시가 될 위험 앞에 서 있다.
결국 서산이 맞닥뜨린 문제는 분명하다.
이제 더는 “확장할 것인가, 다질 것인가”라는 식의 느긋한 선택지를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서산 경제와 도시 구조를 근본부터 다시 짜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을 버릴 것인지, 무엇을 키울 것인지,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냉정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픈 결정을 피한 채 좋은 말만 늘어놓는다면 서산은 회복이 아니라 추락의 속도만 더 빨라질 것이다.
서산은 지금 시험대에 오른 것이 아니다.
이미 심판대 위에 올라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과거의 성공을 붙들고, 무난한 공약에 기대고,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길 기다린다면 답은 뻔하다. 서산의 위기는 더 이상 외부 충격 때문만이 아니라, 위기를 알고도 바꾸지 못한 내부의 무능과 안일함 때문에 더 커질 것이다.
지금 서산에 필요한 것은 위기를 포장하는 말이 아니다.
시민을 안심시키는 공허한 위로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용기, 기득권과 관성을 깨는 결단, 그리고 도시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냉혹한 현실 감각이다.
서산은 더 이상 꿈같은 대박 산업을 기다릴 처지가 아니다.
환상을 버려야 산다.
미봉책을 버려야 산다.
눈치를 보는 정치를 버려야 산다.
지금 바꾸지 못하면, 서산은 위기를 겪는 도시가 아니라 위기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도시로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