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한구 서일중고등학교 이사장
'서산 미래의 보석상자' 저자 조한구 이사장, "남은 생애 고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서산 미래의 보석상자>의 저자 서일중고등학교 조한구 이사장을 만나 지곡면의 <부성 산성>과 <부성사> 고운 최치원 부성 태수의 재발견, 조선시대의 세계적인 화가 <안견>, <정충신과 진충사>, 현재 일본 국보인 <칠지도> 등 지곡을 대표하는 문화유산과 책 <서산 미래의 보석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1.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서일고등학교를 소개해 주십시오
서산시와 태안군이 나눠지기 전인 서산군 시절, 읍내에 한 개의 중학교만 있어 지곡에 사는 학생들은 도보로 3시간 걸려 통학해야 했다. 이런 학생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전 재산을 다 들여 학교를 세웠다. 현재 12.000여 명이 졸업했다. 전교생에게 인사 예절을 통한 철저한 인성교육, 정신력과 체력을 키워주는 전교생의 골프·검도 교육프로그램으로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심과 전력을 다하고 있다.
2. <서산 미래의 보석상자>를 출간하신 배경 설명해 주십시오.
지곡이 품고 있는 부성 산성과 현재 일본 국보인 칠지도 및 금과 철광석을 캐내던 야철지, 최치원과 부성사, 조선시대 화가 안견, 충무공 정충신과 진충사 등 이런 문화유산을 한 시대를 대변하는 표석이다. 빛나는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고 싶어 출간했다.
3. 지곡면은 백제시대 중국과 교역의 관문이라고 하는데 왜 관문이라고 하나요?
부성 산성에서 1Km 지점의 닷개는 범선(판옥선)의 접안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백제 웅진 시대, 사비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까지 중국과 교역의 중심 기능을 했다.
4. 서산 부성 산성과 칠지도 야철지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부성 산성은 지곡면 산성리에 위치한 부성산에 축성된 둘레 529m의 백제 시대 석성으로 성내에서 백제 토기 편과 기와 편이 다량으로 수습되었고, 삼국시대 유물만이 아니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는 유물도 수습되어 오랜 기간 사용된 중요한 성으로 알려져 있다. 홍성의 홍주성, 면천의 면천성처럼 복원되어야 한다.
야철지는 지곡면 도성3리 252번지 어민회관 주변 철동, 속명으로 쇠펭이 마을 야철지는 먼 옛날부터 철, 금을 캐 야철을 했던 곳이다. 이는 전해오는 전설과 현장에서 발견되는 많은 철설로도 알 수 있다. 이곳은 여러 학자가 주장을 달리 발표하고 있으나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백제 근초고왕, 252년에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현재는 일본의 국보가 된 칠지도를 만든 곳이다.
칠지도는 일본역사서 「일본서기」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는데 백제의 한성에서 서쪽으로 하(河)가 있고 7일간 가야 도착하는 ‘곡나’ 라는 지방의 맑은 물이 솟아나는 철산에서 만들어졌다고 쓰여 있다. 조선 태종 대왕이 강무를 위하여 1416년 2월 2일 서울을 출발, 서산에 2월 8일에 도착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서울에서 하(河)를 건너 7일 간이 소요되는 ‘곡나’ 지명의 철산은 바로 지곡의 쇠펭이 철산이었음이 틀림없다.
오순제 교수의 “백제 칠지도의 비밀과 전통사철제련, 환두대도의 복원“에서 칠지도 제작지인 곡나 철산으로 거론되고 있는 곡산, 곡성, 지곡, 충주 중 백제 수도(한성)에서 서쪽으로 7일 거리, 사철로 제작되었으므로 사철이 나오는 곳, 숯 제작에 필요한 소나무, 참나무가 많은 산들이 있는 곳, 주위에 식수로 사용할 샘이 있는 곳, 상감에 쓰이는 금이 나와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지곡 일대가 칠지도의 제작 지인 곡나 철산이였던 것이 확증된다고 밝히고 있다.
5. 고운 최치원과 부성사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고운 최치원은 887년부터 893년 하정사(사신)로 당나라에 파견되기까지 부성군의 태수로 7년 동안 재임했다. 최치원의 재임 기간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왕비김씨봉위선고급망형추복시곡」 원문 마지막 문구에 “중화정미년창월 부성태수 최치원 찬”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중화정미년은 887년으로 해석되며 887년에 부성 태수로 임명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 최치원 편에 “경복2년(893년) 당시 최치원은 부성군 태수로 있었는데 때마침 불러 하정사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성사는 지곡면에 세워진 사우로 조선 선조 때 지역 유학자들이 최치원의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사당을 건립하고 도충사라 했다.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07년 경주최씨 문중에서 사당을 다시 지었고 1913년 현재 위치로 옮기면서 사당의 이름을 부성사라고 했다.
6. 충무공 정충신과 진충사 이야기도 들려주십시오.
정충신 장군은 조선 중기 무관으로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 휘하에 종군, 이괄의 난, 정묘호란, 유흥치의 란 등에 공을 세웠다. 61세로 별세하여 사패지인 지곡면 대요리 마힐산에 예장 됐고, 서거 후 49년 뒤 충무의 시호가 내려졌다. 지곡면 대요리에는 장군의 묘소와 사당인 진충사가 있다.
7. 현동자 안견과 안견기념관, 안견 현창 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안견 선생의 자는 가도, 득수로, 호는 현동자, 주경이다. 조선 초기에 활동한 화가로 출신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지곡이라는 지명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안평대군(1418~1453)의 꿈에 본 도원의 세계를 그렸다는 몽유도원도가 있다.
몽유도원도의 오른쪽에 지곡(지곡(地谷)) 가도라고 쓰여있는 서명과, 신숙주의 「보한재집」에 의하면 “안견은 본래 지곡 사람이다”라는 기록 등이 있다.
지곡이라는 지명에서 지(地)는 지(知), 지(智)는 지(池) 등과 동일한 발음을 적은 것에 불과하여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산 출신 한여현이 1619년에 펴낸 『호산록(湖山錄)』에서 안견을 "본읍지곡인"이라고 단정하여 적은 사실과 봉림대군의 사부였던 안응창의 『죽계사적(竹溪事蹟)』에서도 "본읍지곡인"이라고 지적한 점이 주목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서산군에 관한 기록 중에서 성씨에 관한 부분에 "지곡(地谷) 안(安) · 이(李) · 문(文)" 이라고 적혀 있어서 안 씨가 이 씨 및 문 씨와 더불어 지곡의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였음을 밝혀준다.
서울대 박물관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곡을 직접 방문하여 안우세조의 묘소를 참배하고 인근 동리를 탐문, 토박이 노인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본 결과 문원공 안우세 판서공의 손자로 순흥안씨 십 세손임이 분명하다는 확실히 고증됨을 확인됐다. 향토사가 이은우와 공주사대 이문종 교수 등도 안견 선생은 서산시 지곡면 출신임을 확실한 것으로 판정하였다.
검은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하여 선생의 호를 주경, 현동자라고 한 것으로 사료된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는 부성군에 속해있던 지곡현의 흑점리, 왕산리와 인근 지역인 흑석리는 검은 들로 불렸다. 그리고 이 동리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현동)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 중, 흑점리는 1759년 발간된 여지도서(조정에서 발행한 지리서-영조33 1757~1765 전국 각 군현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엮은 전국 지리서 55책 295개 읍지와 17개 영지, 1개 진지)에 기록된 지명으로 이는 서산의 지명사에 의하면 현재 서산 지곡면 화천3리 화동마을이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마을은 73가구에 201명의 인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곡면 관내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다.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의 제종형으로 양천현감을 지낸 김돈희가 이곳에 살았는데 봄이면 복사꽃, 살구꽃, 진달래꽃, 그리고 야생화가 어우러져 선경을 이루어 이에 합당하게 화동으로 고쳐 부르게 하여 마을 이름이 변하고, 어려서 보았던 수많은 복사꽃의 기억으로 몽유도원도를 그렸을 것으로 사료된다.
고로 안견의 출생지는 흑점리 현재 현 지곡 화천리 화동마을로 추정된다.
이외 모든 관련 사료를 종합해 볼 때 현동자 안견 선생은 충남 서산시 지곡면 출신임이 확실하다 할 것이다.
몽유도원도는 현재는 일본 천리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지곡면 화천리에 위치 안견기념관에 몽유도원도 모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안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안견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기고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미술공모전인 안견미술대전, 안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제례 행사로서 매년 안견기념관에 제상(祭床)을 차리고 추모 공연과 함께 제(祭)를 올리는 안견추모제, 안견 선생과 그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조사 자료를 공유하고, 안견 관련 문화 콘텐츠 개발 및 사업 활성화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한 강연회 또는 토론회를 추진하는 안견학술제가 열리고 있다.
1991년 10월에 개관한 안견기념관은 개관 이후 내·외부 시설이 노후되어 시설의 현대화가 시급하다. 사서팔경도, 소상팔경도, 적벽도의 진본은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몽유도원도 모사본을 비롯한 현재 기념관 내에 전시품들은 모사본이다.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몽유도원도의 환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
서산 8. 지곡면의 문화유산 발전에 대한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 부탁드립니다.
첫째, 부성 산성을 홍성 홍주성, 당진 면천읍성처럼 복원하여 서산 지곡의 오랜 역사를 알려야 한다. 둘째, 조선시대 지방 유림이 세운 부성사를 기반으로 경남 함양군, 경북 의성군과 같은 최치원 기념 사업 및 공원을 현창이 꼭 필요하다. 셋째, 현재 조성되어 있는 안견기념관을 현대식으로 개보수 및 확장하고 안견 예술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몽유도원도의 환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 넷째, 광주광역시에서 이전하기를 원하는 충무공 정충신의 사당 진충사를 기반으로 정충신 관련 문화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다섯째, 칠지도 야철지 근처 칼 박물관 유치 및 민속 체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여섯째, 충·효·열 삼강 정려와 효자 정려를 현대식으로 재조명하여 지역사회에 충·효 교육자료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조한구 이사장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지곡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자 책을 썼다. 남은 생애 고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