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용 목사 (서해중앙교회 담임목사, 서산포스트신문사 운영이사)

2018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2018년이 시작 한지가 어제인가 싶은데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한해가 저물어 가듯이 인생도 얼마 지나면 다 이 땅을 떠나야 한다.

우리 인생을 잘 표현한 사자성어는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고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인생살이에서 죽음과 이별은 중요한 문제이다.

오늘 내 인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엘리자베스 퀘밀러는 「상실수업」에서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지금 그것을 행하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목적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우리가 인생을 보람있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의 순간에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생각보다 짧기 때문이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짧다. 그러므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얼마남지 않았다면 목회자인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주님을 진실로 사랑했는가?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양들을 위해 얼마만큼 기도해 주고 사랑했는가? 그렇지 못했다.

지난 수요일 날 아들이 이사 때문에 와서 집에 며칠 있었다. 늦잠 잔다고 또 잔소리했다.

나는 자식을 키우면서 훈계라는 핑계로 늘 잔소리 하며 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잔소리에 늘 주눅 들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았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자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아들아 사랑 한다’하며 꼭 껴안아 주어야 할 것이다.

가정에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격려와 사랑보다는 꾸지람과 잔소리가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내 아버지가 그랬다. 나는 내 아버지의 끝없는 잔소리와 억압 속에서 반항하며 불안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내가 아버지 생명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포항 고향 집을 방문했다.

그 때 아버지는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나에게 대하던 태도와는 뭔가 달랐다.
내가 집을 떠나며 아버지께 작별인사를 했을 때 아버지는 대문 밖에 까지 나와 서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아버지는 대문 밖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얼마 후 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내 아버지는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막내인 나를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한 미안함과 측은함 때문에 내가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내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의 눈빛과 대문 밖에서 바라보던 모습 속에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들아 미안하다, 잘 있거라, 너를 사랑하지 못했던 못난 아비를 용서해 다오’하는 것이었다.
우리 인생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한번 뿐 인 인생살이를 후회하지 않으려면 엘리자베스 퀘밀러의 말처럼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지금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느낀 사랑과 준 사랑은 결코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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