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조규선 전 서산시장

서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세계의 구성원이자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다. ‘너와 나를 우리라고 한다. 우리는 공동운명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존중의 사회를 원한다.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나은 삶을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한다. 더 나은 삶은 미래이고 더 나은 미래의 자료는 꿈이다. 꿈이 있는 사회, 매력 있는 도시, 살기 좋은 사회는 어린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환경을 가진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인간의 본심이 아니겠는가?

최근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다는 현대문명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백인경찰이 흑인을 목 졸라 죽인데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시민들의 더욱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했다. 9세 남아를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 계모의 8개월이 넘는 학대행위가 아이가 죽은 뒤 드러나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경남 창녕의 9세 학대 아동은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을 다치고, 뜨거운 쇠 젓가락에 발바닥이 지져졌다. 이들에게 집은 지옥이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이런 계부와 계모는 짐승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한다. 하물며 인간인데..... 남의 자식을 사랑할 줄 알아야 인간이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홉 살 소녀는 쇠사슬이 풀린 틈을 타 탈출했다. 그 용기와 지나던 시민의 관심이 소중한 한 생명을 살렸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문제는 행복e음 시스템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위기 아동인 소녀의 집을 방문하여 보살펴야 하는데 이를 이행치 않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방문하지 않은 이유를 보건복지부의 지침이라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방문을 억제했다 하더라도 개인과 지역 실정에 맞추어 주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공무원의 책임이고 자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방에서 숨진 9세 아동이다.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꺼져 간 어린 생명. 이웃과 학교, 행정당국의 방문 등 관심이 있었다면 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동의 몸 상태를 본 병원에서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과 아동복지기관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역시 코로나19 지침 핑계이다. 이것 역시 문제이다. 사람은 죽었는데 잘못한 사람이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아무런 조치가 없다. 관계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의 관심이 귀한 생명을 살렸고, 무관심이 9살 난 소년의 소중한 생명을 잃게 만들었다.

슬픈 일이 또 있다.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논란을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와 정의기억연대 대표였던 윤미향 국회의원의 이야기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은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이용만 해먹었다고 절규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용수 할머니가 행사에 다닐 때 배가 고파도 밥을 사주지 않았다고 말한 점이다. 위안부들을 위해 수십억 원의 후원금을 걷고 정부가 지원해 주었는데 생존과 직결되는 식사도 해결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식욕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면 다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방송에서 어떤 분이 그 돈은 밥 사줄 돈이 아닌 것 같다는 말에 정말 놀랐다. 그 돈을 사용할 수 없다면 개인 돈이라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이고 도리가 아니겠는가? 자기들은 밥을 먹었을 것이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겠다.

필자가 서산시장 직에 있을 때 시민에게 용서를 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날 해미읍성 앞 도로 확장으로 인한 석유 판매소 이전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며 부부가 S시의원과 함께 찾아왔다. 도로에 편입된 토지 보상은 받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석유판매소 허가를 해주지 않아 생계가 어렵다는 하소연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담당부서에서 잘 못했다는 판단이 들었다. 당연히 석유판매소 허가를 해 주거나 아니면 영업 손실 보상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먼저 부부에게 용서를 빌고 담당팀장을 불렀다. 부부는 석유판매소 영업을 계속하기 위해 왔지 영업 손상 보상은 생각지도 않았다고 했다. 담당팀장은 영업 손실 보상은 자기 소관이 아니고 허가도 해줄 수 없다고 완강했다. “왜 해줄 수 없느냐고 물으니 조례에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그럼 철거한 석유판매소 허가는 어떻게 허가가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 당시는 법률(국토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정한 조례로 해줄 수 없다고 완강했다. 또 물었다. “같은 지역에서 상위법은 되고, 조례는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상위법이 우선인데 조례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그때서야 담당팀장은 사실은 조례가 잘못되었다고 시정하라는 공문이 왔는데 아직 시정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조례를 잘못해 놓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면 되겠느냐고 했더니 악법도 법입니다.”라는 답변에 정말 어이가 없었다. 조례 개정 전이라도 속히 허가해 줄 것을 당부하고 민원인에게 용서를 빈 적이 있다.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지켜본 부부는 눈물을 흘렸다. 헤어지면서 시장님 고맙습니다.”하던 부부의 밝은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정말로 미안할 뿐이다.

또 인지 S교회의 개축허가 장로님, 영세아파트 보증금 반환 아주머니, 약속된 공사금 결제 대금 지연 사장님, 공사허가를 위해 1년을 다녔다는 기업체 회장님, 증명서 발급을 위해 담당직원이 출장을 가 반나절을 기다리고 있다는 마을에서 만났던 지인 등 용서를 빌고 해결해 준 사례는 많다.

우리의 행정은 모두가 수동적이다. 지침이나 내규, 법률 등에 너무 얽매여 있다. 이러다 보니 법규에 따라 올바르게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21세기 불확실성 시대에는 일을 올바르게 해서는 부족하다.

우리는 대개 법령이나 규정, 관행에 의해서 절차에 따라 올바르게 하면 끝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옳은 일에 창의성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의는 구성원들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때 나온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공직자가 주민을 수혜의 대상으로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은 큰 문제이다. 준공식장 등 행사장에서 시장에게 감사패를 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던 이유이다. 이 모두는 시민의 돈으로 이룬 것이다. 공직자는 월급 받고 일했을 뿐이다. 봉사(奉仕)는 받들 봉(), 섬길 사()이다. 주민의 뜻을 받들어 심부름 하는 것이 공직자이다.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알아내어 해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 의해 좋은 사회가 되고 나쁜 사회가 된다.

9살 난 아이를 죽게 하고 뼈아픈 고통을 준 계모와 계부는 참으로 나쁜 사람이다. 사람은 타고난 내면적 본성이 있고 외면적 성격이 있다. 사람들의 본성과 성격을 아름답게 만들 때 우리사회는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

요즈음 필자가 느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모든 생물과 동물, 자연, 짐승도 사랑하는 세상이다. 미생물도 사랑하는 세상,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인간 도리의 기본이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는가? 감정조절,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사람은 원래 선하다고 하는데 나쁜 사람은 본성에 무색무취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헝클어진 감정을 풀어주는 것도 우리 사회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미국은 GNP가 세계 1위이다. 세계 인류의 최고 선진의식을 가진 나라이다. 시위를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세계에서 제일이다. 트럼프의 얼굴은 분노에 차 있다. 감정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

다행히 서산은 코로나19를 잘 극복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과 한국 등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있었다. 며칠 전 음주운전으로 서산B초등학교 인근에서 9세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이 그렇다.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관심을 갖고 법을 준수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정보기술 IT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후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기존 사회 구조와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산업변화를 주도하며 새로운 시장을 열 수도 있고 사회 불균형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19로 인간이 죽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인간이 존중되고,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인간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이러한 문명의 전환점에서 우리 서산이 사람을 존중하는 좋은 사회의 첫 번째 도시,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서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로부터 인심 좋고 살기 좋다는 우리 서산이 한국의 중심을 넘어 세계 중심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조규선

- 49년 서산 출생, 단국대 경제학 석사, 명예농학박사, 대전일보 기자 당시 핵폐기물 처리장 부당성을 심층 보도하여 한국 기자상을 수상한 언론인 출신이다. 4-5대 민선 서산시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공동회장, 한국JC중앙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서대 대우교수, 미국세인트미션대학 명예교수, ()썬솔라에너지 대표이사로 있다.

수필가와 아동문학가로 수상집 내 마음의 빈 터”, 에세이 세상에 공짜 없다”, 동화집 할아버지 선물(공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수상으로 새마을 포장(대통령), 충남도문화상,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인물대상 등을 비롯 교육계와 환경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유엔산하 NGO 단체인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가 시상하는 세계평화 교육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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